내가 처음 개발사에 입사했을 때의 컴퓨터 환경은 486 CPU에 메모리 16M 정도였었다. 그것도 개발자에게 만 주어지는 고성능 환경이었는데 이 환경에서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풀 빌드하는데 5분 정도가 걸렸다. 컴파일하는 중에는 CPU를 독차지하기 때문에 빌드 중에 웹 서핑을 한다거나 음악을 들으면 더 느려지므로 그냥 내버려 둬야 했다. 5분 동안 컴퓨터도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책을 뒤적거리거나 생각을 하다가 심심하면 담배도 한대 피우고 커피나 콜라도 한잔 마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매번 5분을 기다리자면 마땅히 할 거리도 없다. 그래서 옆 사무실로 놀러가 동료들과 잡담도 하고 여직원들에게 껄떡거려 보기도 하는데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남녀가 만나면 시간이 참 잘 흘러간다. 그렇다고 "나 딱 5분 동안만 껄떡거릴께"하면 시간 재가며 나랑 놀아 줄 친절하고 한가한 직원도 없고 어찌어찌 하다 보면 30분도 훌쩍 가 버린다.

그러다 보니 수정 후에 매번 테스트하기 어려워 다량의 코드를 작성하고 신중하게 점검한 후에라야 한꺼번 에 컴파일해 볼 수 있었다. 하루에 몇 번 컴파일해 보지도 못하므로 코드를 작성하는 양도 작을 수밖에 없어 마음만 급한 경우가 허다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컴파일해 놓고 신나게 놀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요런 생각이 들 때이다.

'내가 뭘 고쳐 놓고 컴파일했지?'

이 기분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를거다. 분명히 뭔가 고쳐 놓고 컴파일했는데 뭘 테스트해 봐야 할지를 잊어 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느린 컴파일 속도는 기다리는 시간도 문제지만 개발자의 사고 흐름을 연속적으 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개발자에게 컴파일은 어쩌다가 한 번씩 하는 동작이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이므로 컴파일 속도는 개발 속도와 직결된다.

같은 프로젝트를 최신의 컴퓨터 환경에서 컴파일하면 10초 정도밖에 안걸린다. 요즘 세대들에게 컴파일하 는데 5분이 걸렸다는 얘기를 하면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보다 더 앞서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선배들은 더 느렸던 시절도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최신식 컴퓨터라 하더라도 컴파일 속도는 항상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그래서 온갖 방법으로 컴파일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애쓰게 되었고 그 결과가 언어의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